이런 여행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거실에는 남편의 커피 향이 천천히 퍼진다.

나는 기타 줄을 가만히 튕기며

수줍은 듯 그 선율 위에 나즈막히 허밍을 얹는다.

오늘은 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좋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다.

이 순간이 좋아서

미리 적어둔 하루의 계획을 하나씩 지운다.

해야 할 일 대신

하고 싶은 마음만 남겨두고,

시간을 아끼는 대신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낸다.

여행은 꼭 많은 곳을 보는 일이 아니라

평소에는 너무 바빠서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비 내리는 창밖을 보고,

커피 향에 잠시 머물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

The Summer We Crossed Europe in the Rain

전날 내린 폭우와 장마의 시작으로 습도가 무려 99%에 달했던 부산.

그리고, 해무(海霧)로 가득했던 해운대에서의 쉼을 기록합니다.

작은 스파들이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어 있어 좀 더 프라이빗한 느낌을 주는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오션스파 ‘씨메르’

일몰 이후, 36˚ ‘아쿠아 바’에서의 저녁(with 하이볼 & 레드와인)

파라다이스 호텔 Bar Nyx

BGM처럼 깔린 재즈 음악과 블랙과 레드에 어울리는 조도.

그리고 뭐랄까… 적당히 무게감 있는 공기와 향.

푸드플레터와 시그니처 칵테일까지 모든게 조화로왔던 공간.

마치,

빗 속에서 유럽을 여행했던 그 여름날처럼( The Summer We Crossed Europe in the Rain)

더할나위없이 행복했던 날들.

I’m so glad you’re here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 기간동안 머물었던 호텔

사진 한 장에 감성적인 무드 한 조각 넣은 허름한 허세입니다.

시작은 분명 이토록 미니멀하고 심플한 발걸음이었는데,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매일 7시간씩 이어진 밀도 높은 여정 탓에, 부산에 돌아온 지금은 마치 마라톤 풀코스를 끝마친 러너처럼 기분 좋은 탈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온 몸의 깊은 피로감은 덤.

왕복 기차표와 머무는 동안의 여비, 그리고 도서전에 쏟아부은 지출까지 어마어마했는데요.

그럼에도, 그 모든 기회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을만큼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던 2026 서울국제도서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작은 출판사 대표님들과 나눈 인사이트와 조언,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조만간 차분히 정리해 공유할께요.

기분이 블루블루, 안녕! 파랑, 바다

팔을 최대한 늘려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모래사장에 한걸음 발을 내딛는다.

종일 내린 비 때문에, 모래의 찬 기운이 머리끝까지 찌릿하게 올라온다.

해질녘의 풍경은 여유롭지만, 검게 말리는 파도가 들어서는 바다는 무섭다.

맥박이 빨라진다.

화이트워시의 힘이 너무 세서 보드와 함께 통돌이를 벌써 두 번이나 당했다.

라인업까지 어떻게 나가지?

Drift 08. 러브하오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는 건 불빛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 자체이니.

난 당신에게서 피어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 향이 좋소.

겨울에 태어나 나에게 와주어 감사하오.

러브하오.

매일 밤 그리도 드라마 다시보기를 하시더니 말끝마다 [~오]체를 써서 나를 괴롭히는 미스텨 션샤인이 있다.

난 줄곧 싱글노트 향수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의 ‘우드세이지(Wood sage&sea salg)’향수만 사용해왔다.

반면, 미스터 션샤인은 내가 크리스챤 디오르(Christian Dior)의 여성스럽고 진한 ‘미스 디올 블루밍 부케(Miss Dior Blooming Bouquet)’를 뿌리길 원한다.

과연 향수는 나를 위해 뿌려야 하는 것인가? 타인을 위해 뿌려야 하는 것인가?

올해도 어김없이 화려함의 극치로 포장된 미스 디올 향수를 받았다.

이후의 이야기는 https://blog.naver.com/hurmannhusse에서 연재됩니다.

Drift 07. X에게 고(告)함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가 있다.

글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선 응당 영화를 한 번 더 본 후에 내용을 언급해야 하지만, 어차피 오늘 이곳은 진흙탕이 될 예정이니 퀄리티 따윈 기대하지 마시라.

[봄] 동자승

미물의 생명을 귀이 여기지 않는 동자승은 허리에 돌이 묶이는 벌을 받게 된다.

스님 내 등에 돌이 붙었어요. 빨리 풀어줘요.

고통스러우냐?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은 지금 어떻겠느냐. 어서 찾아서 풀어주거라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 어느 하나라도 죽은 게 있으면 너는 평생 동안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게 딜 것이다.

[여름] 소년승

요양을 위해 암자에 들어온 소녀와 처음으로 관계를 한 후로 성욕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 소년승에게 노승이 말한다.

이제 떠나거라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게 한다.

Mady by Hurmann Hu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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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6. 무엇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다

노트북을 열었다.

파란 불빛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메타버스에 접속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이제 그녀는 Hurmann Husse다.

22시, 그곳엔 이웃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재수 없는 말 한마디만 할게요”

그녀는 다소 떨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연신 두드렸다.

“난… 5개 국어를 해요”

3초 정적

주변의 이웃들은 이 조용하고도 재수 없는 발언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누구 한 명이 먼저 우우우우우우만 해주면 될 일이었다.

이웃들의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재수 없는 거 알아요. 하지만 화내시기 전에 제 말 좀 들어주시겠어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 슬픈 드라마, 훅 눈물이 터질 수 있으니 티슈가 필요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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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5. 지하경제활성화시대의 사모님

SCENE 1 : 짭과 찐 그 애매한 사이

2013년 국가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지하경제자문위원회’를 설치하여 지하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고 대통령이 직접 방송에서 말씀하셨다. 분명, 지하경제 양성화라고 쓰고 활성화라고 읽은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해 여름 ‘이태원 트리플 에이’ 장인들이 대거 잡혀가면서 이태원 지하상권은 더할나위 없이 침체되었다. 싸늘한 여름이었다.

어지간히 사회적 명망과 지위와 민감한 그녀들인지라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1차 접선장소를 이태원 옛날국시로 정했다.

국수 육수를 들이키던 중, 옆 테이블 꼬마김밥에 시선을 내리 꽂은 한 명이 왼쪽 눈썹을 씰룩거리자 나머지 구성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일어나 김밥주문을 하러 간다.

오늘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2차 접선 장소는 인근 이태원 시장 지하입구이다. 각자 자신의 장비를 확인하고 임무용 특수 약물을 꺼내 들이킨다.

이 분야 최고의 자양강장제 ‘박카스’다!

드링킹을 신호로, 한 남자가 그녀들에게 스르륵 다가온다. 그리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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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4. 오! 수정

개털의 탄생

검은 가죽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은 한 남자가 있다.

슬리퍼 한 짝이 의자 아래에 뒤집어져 있고, 오른쪽 다리를 꼬아 연신 발가락 양말 사이사이를 긁어대더니, 검지 손가락을 건들거리며 누군가를 부른다.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는 한 소녀가 서 있다.

한 발 앞으로, 아니 한 발 뒤로.

소녀는 그의 접촉을 피하려 애쓰지만 이내 남자는 갈고리처럼 큰 손으로 곱게 포개져 있는 소녀의 두 손을 꼼짝 못 하게 감아버리며 두 무릎사이에 소녀를 세워버린다.

Made by Hurmann Hu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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