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ft 08. 러브하오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는 건 불빛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 자체이니.

난 당신에게서 피어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 향이 좋소.

겨울에 태어나 나에게 와주어 감사하오.

러브하오.

매일 밤 그리도 드라마 다시보기를 하시더니 말끝마다 [~오]체를 써서 나를 괴롭히는 미스텨 션샤인이 있다.

난 줄곧 싱글노트 향수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의 ‘우드세이지(Wood sage&sea salg)’향수만 사용해왔다.

반면, 미스터 션샤인은 내가 크리스챤 디오르(Christian Dior)의 여성스럽고 진한 ‘미스 디올 블루밍 부케(Miss Dior Blooming Bouquet)’를 뿌리길 원한다.

과연 향수는 나를 위해 뿌려야 하는 것인가? 타인을 위해 뿌려야 하는 것인가?

올해도 어김없이 화려함의 극치로 포장된 미스 디올 향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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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7. X에게 고(告)함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가 있다.

글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선 응당 영화를 한 번 더 본 후에 내용을 언급해야 하지만, 어차피 오늘 이곳은 진흙탕이 될 예정이니 퀄리티 따윈 기대하지 마시라.

[봄] 동자승

미물의 생명을 귀이 여기지 않는 동자승은 허리에 돌이 묶이는 벌을 받게 된다.

스님 내 등에 돌이 붙었어요. 빨리 풀어줘요.

고통스러우냐?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은 지금 어떻겠느냐. 어서 찾아서 풀어주거라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 어느 하나라도 죽은 게 있으면 너는 평생 동안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게 딜 것이다.

[여름] 소년승

요양을 위해 암자에 들어온 소녀와 처음으로 관계를 한 후로 성욕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 소년승에게 노승이 말한다.

이제 떠나거라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게 한다.

Mady by Hurmann Hu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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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6. 무엇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다

노트북을 열었다.

파란 불빛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메타버스에 접속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이제 그녀는 Hurmann Husse다.

22시, 그곳엔 이웃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재수 없는 말 한마디만 할게요”

그녀는 다소 떨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연신 두드렸다.

“난… 5개 국어를 해요”

3초 정적

주변의 이웃들은 이 조용하고도 재수 없는 발언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누구 한 명이 먼저 우우우우우우만 해주면 될 일이었다.

이웃들의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재수 없는 거 알아요. 하지만 화내시기 전에 제 말 좀 들어주시겠어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 슬픈 드라마, 훅 눈물이 터질 수 있으니 티슈가 필요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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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5. 지하경제활성화시대의 사모님

SCENE 1 : 짭과 찐 그 애매한 사이

2013년 국가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지하경제자문위원회’를 설치하여 지하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고 대통령이 직접 방송에서 말씀하셨다. 분명, 지하경제 양성화라고 쓰고 활성화라고 읽은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해 여름 ‘이태원 트리플 에이’ 장인들이 대거 잡혀가면서 이태원 지하상권은 더할나위 없이 침체되었다. 싸늘한 여름이었다.

어지간히 사회적 명망과 지위와 민감한 그녀들인지라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1차 접선장소를 이태원 옛날국시로 정했다.

국수 육수를 들이키던 중, 옆 테이블 꼬마김밥에 시선을 내리 꽂은 한 명이 왼쪽 눈썹을 씰룩거리자 나머지 구성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일어나 김밥주문을 하러 간다.

오늘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2차 접선 장소는 인근 이태원 시장 지하입구이다. 각자 자신의 장비를 확인하고 임무용 특수 약물을 꺼내 들이킨다.

이 분야 최고의 자양강장제 ‘박카스’다!

드링킹을 신호로, 한 남자가 그녀들에게 스르륵 다가온다. 그리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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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4. 오! 수정

개털의 탄생

검은 가죽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은 한 남자가 있다.

슬리퍼 한 짝이 의자 아래에 뒤집어져 있고, 오른쪽 다리를 꼬아 연신 발가락 양말 사이사이를 긁어대더니, 검지 손가락을 건들거리며 누군가를 부른다.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는 한 소녀가 서 있다.

한 발 앞으로, 아니 한 발 뒤로.

소녀는 그의 접촉을 피하려 애쓰지만 이내 남자는 갈고리처럼 큰 손으로 곱게 포개져 있는 소녀의 두 손을 꼼짝 못 하게 감아버리며 두 무릎사이에 소녀를 세워버린다.

Made by Hurmann Hu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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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3. 안아 줘, 나의 힘겨운 하루

끈적끈적한 습기에 숨 막힐 듯했던 지난 여름,

오랜만에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던 퇴근길~

서너 살쯤 된 아이를 안은 엄마가 버스에 올라탔다.

한 팔엔 아이를 품고, 다른 팔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아이를 안은 손에는 아직 끈으로 훌치지 못한 장우산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으로 버스 결제를 마친 아이엄마는 손잡이를 잡을 비는 손이 없어 휘청거리며 위태롭게 버스 안으로 몇 걸음 들어왔다.

곧바로 일어나 아이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하니… 미안해한다.

“이번에 내립니다”

(덜 미안해하도록 최대한 짧게 내뱉은 말이었는데 글로 옮겨보니.. 더 없이 싸가지없누)

Mady by Hurmann Hu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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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2. 각성 ; 유니버스의 시작

내 몸엔 타투가 세 군데 있다.

왼쪽 팔목과 팔꿈치 사이에 하나,

경추 6번과 7번 사이에 하나 그리고 the other.

(나머지 하나를 찾으라 하면 으레 등판과 엉덩이에 걸쳐 잉어가 열 마리쯤 노닌다던지 호랑이나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시던데, 맘대로 상상하도록 답은 알려주지 않겠다)

타투가 흔한 젊은 세대와는 달리, 내 연령대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아이덴티티(Identity)이자 확실한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로 사용된다.

백 마디 말보다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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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1. 크고 강한 파도가 올 확률

5F 길드원 모입시다!

▶ 기온 16도

▶오프쇼어 바람 20 kts

▶1.2m 만수위

▶남동쪽 1.5m 파고, 피리어드 9.0s

서핑 단톡방에 공지사항이 올라온지 몇 초 지나지 않아 비명과 설레발치는 이모티콘으로 난리가 났다.

(5F 길드원 : 5시간 동안 Full로 서핑 할 길드멤버 / 오프쇼어 : 육지에서 바다를 향해 부는 바람 / 피리어드 : 파도의 간격으로 9s 이상이면 윈드스웰이라 한다. 보드 뒤집어지면 통돌이 당할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추석 이후 가을은 서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가을바다의 변화는 예측가능한 오차를 잘 벗어나질 않아서 계획 세우기도 좋다.

WSB FARM과 Windfinder 앱으로 파도상황을 확인해 보니 진짜 끝내준다.

드.디.어 내일 크고 강한 파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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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00. 유한마담표류기를 시작하며

고등학교 프랑스어 수업시간,

암막이 쳐진 교실에 슬라이드 프로젝터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린다.

찰칵찰칵 소리와 함께 파리의 풍경이 이어지다 갑자기 교실 가득 눈부시게 파란 하늘빛이 퍼지더니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가 나타났다.

친구들은 얕은 탄성을 내뱉었고, 난 처음으로 꿈이란 게 생겼다.

‘나…교량을…만들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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